<인생, 느끼고 깨닫다> 제7장 내면 깊은 곳에서 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을 찾자

Author:쉬에청 큰스님     기사입력:2016-07-04 12:51:20
2006년 11 월 12 일에 열기로 한 "옴력 9 월 19 일 법화법회"귀의(歸依)의식이 2006년 11월 4일에 열렸습니다. 이날 쉬에청(學誠)큰스님은 거센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대중에게 <내면 깊은 곳에서 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을 찾자>라는 주제로 불법은 사람을 중심 으로 하여 착안점 이 중생에 있으니, 중생의 심리로부터 노력하여 생명의 의의와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법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단체에 융합되어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자

1)단체 안에서 책임을 맡자

여러분이 절에 와서 불법을 배우고 봉사자가 되어 복덕,지혜,자량을 모으고,화합하고성불의 경지로 올라가는(和合增上)사법우(師法友:스승,불법,도반)단체중의 일원이 되었습니다.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자기가 화합 단체의 일원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요?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로소 자신이 단체의 일원이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요?

개인을 예로 들면,우리 각 개인은 신체를 갖고 있고 이 혈육의 몸을 자신으로 여기며 추울 때는 옷을 입고,배가 고플 때는 밥을 먹고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을 하고 매일 얼굴을 씻고 이를 닦는 등 온갖 방법으로 소중히 하고 보살핍니다.하루 중 많은 시간을 들여 자기의 몸을 보살핍니다.만일 자기가 한 가정의 일원,예를 들어 집안의 가장 같은 중요한 일원이라고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갖은 방법을 써서 일을 할 것이고 돈을 벌어 가정을 부양하고 집안의 모든 사람을 돌보고 심지어 자기가 거주하는 집,자기와 가족의 생활조건,사용하는 물건을 모두 힘써 보살필 것입니다.만일 스스로가 직장의 일원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직장에서 일을 함에 있어 책임감을 갖고 아주 열심히 일할 것이며 매일 자신의 직장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각 방면의 업무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신의 신체,가정,직장에 대해 다른 태도와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이 근원은 사람의 사상적 인지에 있습니다.당신이 이런 측면이 자기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해야만이 몸과 마음을 다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불법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당신이 진정으로 스스로 스승,불법,도반과 화합하고 높은 경계로 올라가는 단체의 일원이라고 느낄 때 어떻게 자기의 역할을 다할 것인지,어떻게 여러 수행도반 가운데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휘할 것인지 어떻게 단체의 발전을 위해 힘을 내고 발심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불법의 단체는 이름대로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불법의 이념을 실천해야만 합니다.불법의 이념은 중생을 인도하여 궁극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 쾌락을 얻게 하며 불과를 원만히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불교는 사람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중생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자타가 둘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즉 우리가 진정으로 모든 인류,모든 중생을 자신이 관심을 갖고 보살피고 이롭게 할 대상으로 여겨야 우리의 마음에 분별심이 없고 우리의 마음에 한계가 없어져 평등의 마음,포용의 마음,청정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고,모든 중생을 대할 수 있으며,자기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특히 우리가 청정한 발심으로 모든 사람,사물,자연환경,사회환경을 대하면 우리의 모든 행동,일거수 일투족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우리의 행위는 나날이 가치가 있을 것이며,우리의 취지와 목표가 더욱 명확할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이 몸이 나라고 여기고 자기 집안의 형제자매,부모 및 직장의 동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혹은 이런 사람들이 자기와는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기와 대립하는 사람이라 여긴다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다른 마음,다른 심리상태를 갖게 될 것입니다.우리에게 부모님은 가장 은덕이 있는 분들입니다.우리가 만일 자기를 대하고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의 몸을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로 부모님,형제자매,그리고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대하려면 하나 하나씩 배워야 하며 이런 발심을 배우고,어떻게 이렇게 선량한 마음 상태를 길러낼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불법을 배우는 것은바로 선량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고 자기의 선량한 마음을 늘리는 것으로 동기,의요(意樂:무슨 일인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발심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2)평상심과 환희심으로 모든 것을 대하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이런 고통은 번뇌와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우리에게 번뇌가 있기에 외적인 사람,일,그리고 사물,객관적인 환경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우리는 항상 자기 이외의 사람,사물과 쉽게 대립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마치 자신이 축구장에서 공을 차는 것과 같습니다.우리는 축구장의 운동선수이자 코치입니다.무슨 뜻일까요?운동선수든 코치이든 모두 자신의 팀이 공을 잘 차고 우승을 하길 희망합니다.하지만 진짜로 경기를 진행할 때 어떤 팀이든 마지막에 한 팀은 지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자기가 이기길 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슬퍼하기 쉽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축구 경기를 볼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면이 평온하지 않게 됩니다.늘 어떤 한 팀이 이기기를 바라고 어떤 팀이 지기를 바랍니다.전반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내면은 평온하지 않습니다.사실 스포츠의 각도로 진정하게 바라본다면,축구의 각도로 본다면,완전히 그의 기술,신체 능력을 봐야 합니다.지고 이기는 것은 하나의 결과이며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우리의 인생은 몇 십 년간 매일 일을 합니다.어떤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이나,자기가 축구 경기를 뛰는 것과 같습니다.지거나 이길 때 모두 분별심이 없고,평등심,청정심으로 대해야 하며,외재적이고 일시적,내면적이고 진실하지 못한 승리와 패배,옳고 그름 등에 의해 자기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며 자기의 심리 상태를 곤혹스럽게 하거나 자기의 내면이 갈수록 무명해지고 어두워지게 해서는 안됩니다.만일 그렇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내면은 진실하지 못한 경계들,하찮은 모습을 중시하게 될 것이며,더욱더 원대한 목표와 포부가 결핍되고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에 결여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문제 입니다.우리의 내면에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자연히 외재적인 경계에 대해,우리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접촉할 수 있는 것,자기와 관련이 있는 것,관련이 없는 것이 해괴하고 말하지 못할 수많은 고통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사물에 대해,일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태도를 배양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축구 경기의 마지막 결과를 보고 어떤 팀이 이기고 졌는가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 기뻐할 수 있고,즐거워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은 자기 마음 속의 느낌입니다.우리는 바로 이러한 기뿐 마음,평상심,환희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모든 사람과 일,환경을 대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2.선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자

우리는 일생 동안 부단히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물질적인 면의 추구도 있고,정신적인 면의 추구도 있습니다.물질적인 추구는 쉽게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집안에서는,어린이들,아기들이 자기의 아빠 엄마가 외출을 할 때 무엇을 사고 싶은지 이야기 할 것입니다.혹은 부모님이 외출을 할 때 아이들에게 무엇을 사고 싶은지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아이들은 부모에게 장난감을 사달라,옷을 사달라 학습도구나 생활용품 등을 사달라며 리스트를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커서까지,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갖고 있는 리스트가 모두 물질적인 것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아주 명확합니다.하지만 정신영역의 리스트는 내면에서 필요로 하는 정신의 자량(資糧)은 쉽게 작성하지 못합니다.갈팡질팡,흐릿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무엇이 필요 없는지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이런 것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나요?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사실 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기쁨과 슬픔은 모두 사람의 정서이며,사람의 마음으로 내면 속의 느낌입니다.내면 속의 느낌은 아주 불가사의한 것이며 미묘하고 심오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일이 농약을 쳐서 더럽다고 느끼면 우리는 물로 깨끗하게 씻고 칼로 껍질을 벗깁니다.반대로 우리가 과일,식품,채소가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다면,이러한 것들이 다 깨끗하고 문제 없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껍질을 까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껍질을 깔 때 이미 이 과일이 더럽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더러우니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여긴 것 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이 과일의 껍질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먹었을 때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여전히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어떤 껍질은 아마도 더러워서 먹었을 때 해로울지도 모르며,어떤 껍질은 속의 과육보다 더 영양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외피가 과육보다 좋지 못하다고 여기고 있으며,이것이 바로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인식입니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들 이렇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일종의 습관이 되었습니다.생활상의 습관,행위상의 습관,이 습관은 쉽게 고치지 못하며 우리의 일생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학습,생활,업무,발심에 있어서 좋은 습관을 기르고자 함이며,나아가 학습,생활,업무,발심 중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자 함입니다.좋은 습관을 기르고,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입니다.역으로 보자면 나쁜 습관은 천천히 없애고 좋은 습관은 조금씩 조금씩 길러가는 것입니다.만일 좋은 습관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고 인생의 의의도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3.생명의 진정한 가치

한 사람이 만약 자기 자신의 수양에만 힘을 쓰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돌보지도 상대하지도 않는다면 마음씨가 아주 작고 도량이 아주 좁아져 그의 인격은 자연히 문제가 생기고 원만할 수가 없어 지혜와 자비의 힘도 약해져,그 생명의 의의가 아주 작아지니 궁극적인 목표니,성불의 바람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절에 오는 의미

일반적인 세속의 의미로 이야기하면 비교적 미미하고 국한적인 개인의 인식을 포기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예를 들어 우리가 불법을 배우러 북경시내에서 한 두 시간씩 차를 타고 절에 와서 또 한 두 시간씩 걸려 돌아가고,이곳에서 경전을 듣고,법을 듣고,경전을 읽고 모두 함께 의견을 교류하는 것은 만일 불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며,우리가 절에 오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불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주말에는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모여 밥을 먹고 함께 무엇인가를 하기를 바랍니다.불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의 그 마음,그런 발심 및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출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출가는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으며 절에 와서 원래 모르던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원래 우리 모두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절에 와서 나날이 익숙해지고 식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원래의 식구는 출가 후에 같이 있을 수 없으니 일반적인 이론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즉,절에 와서 불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스승,법,도반이 화합하는 높은 경계로 올라간 단체이기 때문에,서로간에 자기의 가족보다 오히려 더 친하게 됩니다.모두가 만나면 늘 기쁘고,즐거우며 내면에 장애가 없고 어떤 갈등이나 거리가 없습니다.왜 이렇게 될까요?모두가 여기에 와서 청정한 발심을 하고 목표가 명확하니 자기의 습관과 나쁜 점을 고치려 하고 발심을 잘 하려 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이렇게 인식하고 자기의 문제를 찾아 자기 내면의 문제를 다스리고 극복하면 자연히 외부의 행위들은 염두에 두지 않게 될 것이며 바깥의 생활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 조금 좋은 것도 염두에 두지 않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은 물질조건의 양이나,우열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내면의 성취를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이런 기준은 집안에서의 자기와는 다릅니다.자기 집안에서의 기준은 자녀가 부모님에 대한 것도 좋고,혹은 부모님이 자녀에 대한 것도 언제나 좋은 것을 주고 싶고,좋은 것을 입히고 싶고,재미 있는 것,쓰기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언제나 물질적인 면에서 착안하며 적어도 이런 방면이 대부분 입니다.당연히 한 가족이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 가에서도 도리를 언급하지만 이러한 도리는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절에서 우리가 듣고 전하는 도리는 다릅니다.절 안의 도리는 더욱 궁극적이고 더욱 원만하며 더욱 전면적입니다.우리는 모든 인류,모든 중생을 우리가 대해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또한 이런 중생은 모두 평등하며 친한 사람과 원한 있는 사람이 평등하여 적이 없습니다.우리 모두는 중생이며 불제자이며 모두 동등합니다.모두 나쁜 습관을 갖고 있고 문제,번뇌를 갖고 있으며 모두 수행 중입니다.우리는 이러한 관념,이러한 불법의 지견(知見)을 세워야만이 “겸제천하(兼濟天下:더불어 천하를 구제하다)”를 이룰 수 있습니다.예전에 언급했던 “소선독선기신,대선겸제천하”(小善獨善其身,大善兼濟天下:작은 선은 자신만을 바르게 하고,큰 선은 천하를 더불어 구제한다)입니다.

2)자신의 생명을 확장하라

우리는 오래 전부터 부단히도 생사를 윤회하고 있습니다.시작 없는 생사 윤회의 연결고리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의 마디이며 하나의 단계일 뿐입니다.즉,집안의 부모,형제,자매 같은 인륜 관계는 현생의 것일 뿐입니다.예를 들어,이 생에서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낳았고,돌아가신 후에는 아마도 다시 환생하여 당신의 집에서 태어나 당신 아이의 아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즉,생사 윤회의 과정 중에서 우리는 모두 이미 서로간의 부모였던 것입니다.그래서 <범망경(梵網經)>에서는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요,모든 여인은 나의 어머니이다.” 즉,모든 사람을 자신의 부모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무한한 생명이라는 측면으로 보고,미루어 판단해보면 이런 명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생명,끝없는 시공으로 자기의 생명을 인식하는 것과 단지 현세의 일생으로 자기의 생명을 인식하는 것 혹은 단지 오늘,눈 앞의 이 경계로 자기 생명의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얻어내는 결론과 답이 다를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더 길고 먼,더 넓은 경계로 자기 생명의 가치와 의의를 인식해야 합니다.

4.불법에 들어가다

1)스스로의 마음을 잘 활용하자

여러분이 온 이 절은 환경이 아주 좋습니다.웅장하게 둘러진 산,밤에는 달을 볼 수 있고,아침에는 일출을 볼 수 있으며,저녁 무렵에는 노을도 볼 수 있습니다.절 안에는 오래된 돌 다리,오래된 은행 나무,건축물도 있고,이렇게 많은 법사님이 수행을 하고 여러분을 이끌고 있습니다.또 아주 많은 봉사자들이 발심하여 지키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아주 수승한 것입니다.우리가 마음을 내어 관찰하고 주의 깊게 보아 모든 신경을 우리가 접촉하고 있는 이 경계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세심하게 온 마음을 들여 바깥의 이 경계를 보고 느끼지 않는다면 마음속에서 작용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즉,우리가 경계를 마주할 때 내면의 인식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2)마음의 기준을 세우자

내면의 상태,기복에는 기준이 있고 경계가 있습니다.외재적인 사람,사물,환경,형상이 있는 물건도 기준이 있고 경계가 있습니다.하나는 외재적인 기준이며,하나는 내면의 기준이고 마음 속의 힘입니다.반대로 말하면,내면의 기준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야 내면의 기준이 세워지고 내면의 기준이 비교적 높으면 바깥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 수 없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만일 내면에 원래 기준이 없거나 기준이 아주 낮고 떨어지고 비규범적이면 바깥에 어떠한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의 어떤 동참 도반들은 절에 온지 아주 오래 되어,절에 사는 것이 자기 집에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막 시작했을 때에는 절이 정말 좋게 느껴졌는데 오래 살다 보니 그냥 비슷하게 느껴질 것입니다.사실 이 두 개의 환경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당신 스스로 막 시작했을 때는 이 환경이 좋았으나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 환경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으로,마음 속에서 좋아했던 것이 여전히 원래 세속의 그런 환경이었습니다.절에서 이런 마음이 작용을 하기 시작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환경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고 내가 원했던 것은 여전히 원래의 그런 환경이라고 느끼게 됩니다.이렇게 되면 이 기준이라는 것이 모호하여 혼란스러워 집니다.사실 모든 것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고 변화하는 것이며,일종의 무명이 작용하는 것입니다.그래서 불법을 배우고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이 물론 시간과도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배우는 시간이 길다고 그 역량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왜 불경에서는 항상 우리에게 초심을 잊지 말라고 할까요?최초의 발심,처음으로 불법을 배우고자 했던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그래서 우리가 불법을 배움에 있어 바로 자기가 최초로 불법에 대해 추구했던 그 마음을 계속해서 보호해 나가야 하고 그것을 지속시켜 나가야 하며 더 넓고 크게 키워나가야 합니다.최초의 이 마음은 선량한 마음,출리심(出離心:삼계를 벗어나 열반을 희구하는 마음),보리심(菩提心)입니다.

3)자신을 위하여 주인이 되라

외재적인 환경이 문제가 있다고 여길 때,수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 경계가 모호할 때,다른 사람에게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고 내 자신이 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이런 생각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물어야 합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위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내면이 선과 악,옳고 그름,번뇌와 보리에 대해서 뚜렷이 알기만 하면 외재적인 기타의 수행도반,거사들을 할 수 있는 한 한껏 돌보고 돕고,깨우치게 수 있습니다.이것도 우리의 발심과 책임입니다.하지만 외재적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고,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단지 사람의 행동이 우리가 보기에 잘못이 있고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문제가 있고,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며,사실상 문제가 있고 없고,해서는 되고 안 되고는 또 다른 일인 것입니다.우리가 하룻동안 만나게 되고 접촉하게 되는 사람과 사물은 아주 많습니다.우리가 다른 사람,사물의 차별적인 경계를 잘 맞추어 나갈 때 우리 내면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 좌우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면의 계정혜(戒定慧)의 힘이 갈수록 충족될 때가 오히려 우리가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때입니다.즉,다른사람이 만일 문제가 있으면 자기 내면의 계정혜의 역량이부족하여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수 없고,우리 마음의 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없다 라고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우리가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늘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다른 사람이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도움을 줬습니까?이런 마음을 낸 적이 있습니까?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까?우리가 남을 돕고 남을 이롭게 하는 과정중의 방법은 적절한가요?

이러한 방면에서 부단히 불법에 근거하여 수행하고 노력하고 내면의 무명상태를 다스리면 우리의 이런 힘은 부단히 늘어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불법을 배우기 이전의 자기가 갖고 있던 동기와 마음상태일 것이며,불법은 여전히 자기와는 요원할 것입니다.

5.정견은 무명을 깨고 오온(五蘊)은 가아(假我)를 만들다

1)무명의 인식

무명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는 다릅니다.무명은 잘못된 견해,단편적인 견해,이상한 생각이 가득한 것입니다.이런 잘못된 관념은 생사의 윤회를 초래하는 근본입니다.당신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모르기 때문에,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고,무엇이 인이고 무엇이 과인지,무엇이 범부의 세계이고 무엇이 성자의 세계인지,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도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우리가 모르기 때문에,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면에 경계와 기준이 완전히 없어 선과 악,옳고 그름,인과 등을 우리가 뚜렷이 분별할 수가 없으니 우리는 어떻게 인을 심고 또 어떻게 평범함을 성스러운 것으로 전환시켜야 합니까?

우리가 선과 악,옳고 그름,인과 관념의 인식,기준을 기르려는 것은 이미 너무 어렵습니다.선악시비 이러한 관점을 진정으로 세우려면,이런 분별능력이 있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을 배워야만이 가능합니다.우리가 선악시비를 분별한 후에야 어떤 것을 해야만 하고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할지,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깊게 말하자면 무명상태가 아직 나타나 있을 때,우리는 쉽게 세상의 모든 무상한 물건이 영원한 것이라고 여깁니다.세상의 많은 고통스러운 현상,즐겁지 않은 현상을 우리는 즐거운 것으로 여기고 세상의 많은 진실되지 못한 거짓된 것을 진실된 것으로 여깁니다.

2)상견과 단견

우리가 자주 말하는 무상무아(無常無我)를 우리는 유상유아(有常有我)로 만듭니다.반대로 말하자면 생사의 회전,생사의 환생과 소멸,이러한 생명 본질의 가장 큰 가치를 가진 명제를 우리는 뚜렷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상견(常見)을 하든지 단견(斷見)을 하든지 입니다.소위 상견이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가 사람이라고 여기고,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죽은 후에 다시 사람이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단견은 사람이 죽은 후에는 없어져서 죽는 것이 바로 죽는 것이라는 것입니다.상견을 가진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이 된다고 여깁니다.사실,당신이 현생에 사람이 되었지만 내세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당신이 내세에 다시 사람이 되는 것은 현생에서 당신이 한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당신이 만일 사람으로서의 업을 지으면 내세에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이러한 상견,단견의 관념이 우리 내면 속에 깊게 자리하여 우리 일생의 행위를 좌지우지 합니다.우리는 불법 교리에 대한 인식과 학습을 통해 무엇이 성불인지,무엇이 적멸인지,무엇이 평온인지 무엇이 영원함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내면 속의 이러한 관념이 바로 서면 자연히 세상의 거짓되고 진실하지 않는 것,유루유위(有漏有爲:번뇌가 있고 여러 인연이 모여 생기는 생멸의 현상)에 대해 또 다른 더 좋고,초월하는 통달한 생활태도를 갖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내면에 세상의 여러 문제에 대한 불법의 태도와 관점을 세우는 것입니다.

3)자아의 허상

사람의 생각마다 모두 생과 멸이 있고 작은 것이 커질 때까지,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계속 변화합니다.사람이란 모두 하나의 계속 존재하는 거짓된 나입니다.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며,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계속 존재하지만 허구적이며,실재적이지 않습니다.이로 인해 우리는 각양각색의 아견(我見)을 만들어냅니다.오늘의 나는 내가 오늘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내가 오늘 어떻게 생활할지,오늘 어디를 갈지,무슨 일들을 할지를 생각합니다.모든 사람들이 다 오늘이라는 상황에서 자기가 오늘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고려하고 일을 합니다.우리는 어제,오늘,내일 이러한 생명의 지속된 상태를 실재적이지 않고,변화하는 것으로 만듭니다.우리는 모두 변화하고 있습니다.모두 오온(五蘊)과 조화를 이루는 거짓된 나입니다.하물며 외부의 경계는 더욱 거짓되고,실재적이지 않습니다.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늘 공부해야 하고 이런 방면은 불법의 근본적인 입장이고,불법의 근본적인 관점입니다.이런 입장이 안정적으로 세워지고,이런 관념,지견이 진정으로 세워진 후에야 불법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6.생명의 의의와 가치를 찾으라

1)마음속의 광명을 펼쳐 보이라

불법은 사람을 중심으로 삼고,유정물을 중심으로 삼으며,모든 중생을 중심으로 삼고 그것의 착안점이 중생,사람,사람의 마음,중생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중생의 심리라는 측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생명의 의의와 가치를 찾으려 합니다.마음 속에 어떤 상태,어떤 문제,어떤 번뇌가 있는지를 보면 내면으로부터 가없는 지혜,무량한 공덕과 보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사회를 살면서 자기 고통의 근원은 외부에 있고 외적인 요인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모든 고통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우리의 모든 즐거움의 근원 또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고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이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내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이 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불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우리는 그것을 돌파해야 하고 귀의를 해서 불법을 배워야만 합니다.내면이 드러나면 내재된 지혜의 보장(寶藏)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즉,마음속에 진정한 법이 생겨야 마음이 진정으로 불법과 서로 어우러질 수 있으며 마음이 불법과 어우러지면 번뇌와는 멀어지게 됩니다.번뇌가 정화되는 것입니다.번뇌가 정화될 때 마음속의 이러한 존경,경건,공경의 마음이 자연히 생겨나고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이렇게 되면,우리의 행위 하나 하나는 일반 사람과 달라질 것입니다.자연스럽게 우리의 행동,언행이 대표하는 의의,뿜어져 나오는 선량한 기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발심,노력,행동으로 인해,우리의 출현으로 인해 모두가 즐거움,청정함을 느끼고 광명과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어디를 가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될 것이며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며 희망과 광명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이 모든 것이 불법의 힘이며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이며 대대로 전승되어 온 조사 대덕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입니다.

2)불법을 배우는 의의와 가치

교육,경제,법률,과학,정치를 막론하고 세상에 있는 여러 학문뿐 아니라,어떤 일이나 어떤 영역도 유정 생명과 관계 없는 것이 없습니다.어떠한 일도 사람과 관계 없는 일이 없고 사람의 마음과 관계 없는 것이 없습니다.세상의 많은 학설들 기능들 모두 유정물에 의해 세상에 나타난 것이고 유정물에 의해 존재하게 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을 떠나면,중생을 떠나면 정치,경제,과학,문화,법률은 의미가 없어집니다.바꾸어 말하면,정치,경제,문화,과학 모든 것의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고,사람의 마음이 더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게 하기 위함이며 어떻게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사람을 돕고,사람을 이롭게 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그래서 불법은 처음부터 이 점에 특별히 주목했습니다.즉 인성의 약점,인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우리 내면의 어두운 면을 알려주어 조금씩 밝은 면을 키워나가도록 했습니다.우리 마음속의 무명상태를 조금씩 옅어지게 하고 우리의 무지를 조금씩 제거해서 하루 하루 지혜가 늘어나고 불성이 하루 하루 드러날 수 있게 했습니다.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의의이며 가치이자 인생의 오묘한 도리입니다.

여러분은 삼보의 곳(三寶地)에 와서 자기 인생의 가치와 의의를 찾고자 하고 자기 생명의 오묘한 비밀을 풀고자 하며 자기 생명의 참된 모습을 알고자 합니다.모든 불법,불경은 우리의 이런 경험,방법,시작점 및 수행하는 과정 속에 나타나는 문제들,그리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알려주어 우리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심이 생기고 공부를 더 잘 하게 해줍니다.

용천사에서는 매주 토요일,일요일마다공수(共修:공동학습 및수행)시간이 있습니다.여러분들은 귀의를 한 후에 시간이 나면 항상 와서 공동수행에 참가합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자주 와서 공동 수행에 참가하고 불법을 익히기만 해도 내면의 불법의 역량은 끊임없이 커질 것입니다.만일 귀의를 한 후에 자주 절에 오지 않거나 더 이상 절에 오지 않았다면 불법을 잘 배우기는 어렵습니다.그래서 귀의를 했으면,생명의 의지할 곳을 찾았다면,진정으로 불법승 삼보를 우리 현생의 의지할 곳으로 삼고 나아가 세세생생에 의지할 곳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여러분께 바칩니다.아미타불! 

편집:설원춘
태그:내면의 고통과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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