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느끼고 깨닫다> 제3장 불교는 체제적이고 완전한 생명교육이다

Author:쉬에청 큰스님     기사입력:2016-07-04 12:48:35
2006년 10월 6일은 “10월 1일 중추절 기복법회” 여섯 번째 날이었습니다. 쉬에청(學誠)큰스님은 이 날 신중을 위해 귀의를 전수하시며 불교는 체계적이고 완전한 생명교육이다^이라는 범문을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법은 매우 조직적이며 질서 정연하고 완전한 유기체로 생명의 교육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부처님께서 생명교육을 창립하셨다

1)부처님에 대한 인식

석가모니 부처님은 수행으로 성도(成道)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성인이십니다.부처님은 복덕,지혜,자비를 갖추신 훌륭한 분이십니다.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 많은 기적과 상서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경전의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실 때 많은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시각장애인들이 시력을 찾았으며 말 못하는 사람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등이 굽은 사람은 곧게 펴지고 다리를 절던 많은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도 석방이 되어 나오고 수많은 맹수들은 더 이상 울부짖거나 사람을 해치지 않게 되었습니다.총체적으로 수많은 상서로운 현상이 출현하여 일반인이 세상에 난 것과는 달랐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분이 높은 왕자였지만 왕위를 잇고 싶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는 출가를 하여 수도(修道)를 하고 스스로 생명의 고통을 해탈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불교를 전승 받아 모두가 능히 절에 와서 불법을 공부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왜 이런 발심을 할 수 있었고 수행을 하여 성불하실 수 있었을까요?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 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즉 늙고,병들고,죽는 것을 보았습니다.부처님은 사람이 나이 들어 눈이 흐리고 이가 빠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지는 것 등을 보면서 마음이 괴롭고 슬프며 고통스러우셨습니다.한번은 부처님께서 성문을 나섰을 때 한 병자가 고통에 숨을 힘들게 몰아 쉬는 것을 보았습니다.석가모니 부처님은 곧바로 대자비심을 내시어 마치 자신이 병이 난 것 같은 고통을 느끼셨습니다.또 한번은 부처님께서 성문(城門)을 나섰을 때 한 사람의 죽음을 보셨습니다.사람이 죽는 그런 광경,그런 고초는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훗날 석가모니 부처님은 엄숙하고 장중한 모습에 의관도 범상치 않은 한 수행자를 만났습니다.이런 광경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하여금 점차 사람의 신체는 항상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이런 고통은 시시각각 우리 사람과 연관되어 있으며 피하지도 못하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죽은 후에는 어디로 갈까요?죽은 후에는 존재하는 걸까요?존재하지 않는 걸까요?사람의 생명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요?사람의 생명은 죽은 후의 단계 즉 내세에서 현세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또 갈수록 더 즐겁고 행복하며 원만해질 수 있는 걸까요?석가모니 부처님은 열심히 이 문제를 사색했습니다.그 후에 부처님은 출가하여 수도(修道)하기로 결연하시고 6년간의 고행 끝에 불과를 원만히 이루시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2)생명의 교육

불교의 본질은 모든 중생을 교육하고 교도하고 교화하여 그들의 정신 세계를 높은 경계로 올리고,도덕성을 향상시키고,지혜를 개발하여 중생들을 범부에서 성인(聖人)으로,진성을 오염으로부터 청정해지도록,번뇌를 보리(菩提)로 바꾸는 데에 있으며,미혹한 세계에서 점차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불교는 일종의 체계적이며 완전한 생명 교육입니다.석가모니 부처님은 곧 이 체계적이고 완전한 생명 교육의 창시자입니다.

예로부터 인도,중국,한국,일본 또한 남전불교(南傳佛敎),장전불교(藏傳佛敎),한전불교(漢傳佛敎)를 막론하고 많은 덕 높으신 고승,조사들이 선대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켜 이어오고 미욱한 중생들이 깨우치도록 교육 하고 이끌어 주시는 책임을 다해 왔습니다.이런 덕 높으신 법사님들이 우리의 스승이며,우리의 선지식이며,우리에게는 은혜로운 분들입니다.불법이 비록 망망대해처럼 넓고 끝이 없어 심오하며 체계가 극히 방대하게 보이지만 그것에는 생명의 교육이라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불법은 아주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하며 완전한 유기체 입니다.

2.스승을 본받아 수행하고,가만인신(暇滿人身)을 아끼자

우리 사람은 인간도(人道)에 처하니,인간도는 육도(六道)중에서 가장 수승하고 가장 얻기 어려운 경계이며,가장 쉽게 불법을 들을 수 있고 가장 쉽게 불법을 받아 들일 수 있으며 가장 선근이 있습니다.우리는 인간도에 머무르며 어떻게 생명의 체계적 교육을 인식하고 배우고 완전히 익혀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꾸고,자기 생명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교육에 대해 말하면 모두들 아주 익숙합니다.우리는 집안에서는 부모의 교육을 받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교육을 받으며 사회에서는 상사의 교육,간부의 교육을 받으며,절에서는 출가 법사님의 교육 등을 받기 때문입니다.이것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사회에서 우리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교육을 중시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선생님을 존경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중화민족이 몇 천년 동안 줄곧 제창하고 널리 드높이는 중요한 관념입니다.오늘날 선생님에 대한 존중은 더욱더 이러합니다.선생님을 존경하고 교육을 중시한다는 불법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스승님의 법을 따른 다는 것입니다.

스승을 따르는 법,즉 의사법(依師法)은 불교 생명 체계 교육을 총괄하는 가장 귀한 경험이자 불법이 교육을 중시하는 가장 가치 있는 내용을 구현한 것입니다.이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우리가 집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더 잘 문화 지식,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불법을 배울 때는 어떻게 하면 출가 법사님께 더 잘 불법을 배울 수 있을까?출가 법사님과 어떻게 대하고 처해야 할까?재가 신도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승단(僧團)를 대하고 법사님을 대해야 하는가?역으로 출가한 법사는 어떻게 신중을 돕고 인도하고 교육을 시키고 모두에게 책임을 할 것인가?이는 또 다른 측면의 문제입니다.출가한 법사님도 마찬가지로 출가한지 더 오래 된 법사님,선지식을 통해 배우고 동시에 부처님,덕 높으신 조사님께 배워야 합니다.결국 우리는 이런 배움의 마음가짐으로,교육을 받는 마음가짐으로 불교를 믿고 불법을 배우고 자기 생명 가운데의 문제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법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의 몸을 가졌으니 아주 복이 많습니다.불교의 언어로 말하자면 가만(暇滿:여유와 원만한 수행조건)을 갖추는 상태입니다.구족가만(具足暇滿)은 불법을 열심히 배우고 수행해야 하며 죽음의 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려 하면 그것은 이미 늦습니다.죽음이 왔을 때 다음 단계가 어디로 갈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건강하고 정신이 맑으며,아직 능력이 있을 때,스스로가 주인일 수 있을 때 시간과 마음을 다 불법에 써야 합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불법을 배우는 것은 차 마시고 밥을 먹는 소일거리가 아니며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노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더더군다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이는 불법의 피상적인 모습만 이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이는 아주 안타까운 일이며 낭비입니다.이런 것들은 우리가 절에 와서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불법입니다.

불경에서 여유와 원만한 수행조건인 가만인신(暇滿人身)을 갖춘 것은 마니보주를 가진 것보다 귀하다 했습니다.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마니보주를 현세의 눈 앞의 빈곤,눈 앞의 어려움,눈 앞의 문제만을 해결할 뿐이지만 불법은 우리가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궁극의 기쁨을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비록 마니보주가 세간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희소하며 가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불법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우리가 가치를 헤아릴 수 없으며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의 보장을 만났으니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우리는 마땅히 부단히 추구하고 불법 지혜의 보장을 얻고자 해야 하며 빈손으로 돌아가 많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더더군다나 우리가 보장(寶藏)을 마주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 해서도 안됩니다.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아직 불법을 배우기 전에 열심히 생각해 두어야 하며,불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눈앞의 문제,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만은 아니며 자기 개인의 일을 해결하기 위함 만도 아닙니다.내세,그리고 더 오래고 먼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많고 많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3.무상은 고이다

1)고고,괴고,행고

모두 알다시피 고통에 대해 불교는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고고(苦苦)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우리가 느낄 수 있는 고통으로 예를 들면 방금 말했던 죽음의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화재,지진,교통사고,질병 등이 발생하는 것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괴고(壞苦),사람은 늙습니다.점차 나이가 들고 변합니다.아주 좋은 옷을 한 벌 갖고 있는데 돌연 구멍이 나거나,우리가 많은 재물을 갖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에게 빼앗기거나 도둑을 맞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은 괴고입니다.괴고와 고고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세간(世間)과 똑같습니다.

또 하나의 고통은 행고(行苦)입니다.행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느끼기도 쉽지 않습니다.행고(行苦)라는 것은 “무상고고(無常故苦)”입니다.세간의 모든 사람,사물,모든 일체의 일체는 무상합니다.이로 인해 무상이라는 이 정의로 보면 그것은 고통인 것입니다.무상하기 때문에 그것은 불확정성을 숨기고 있으며 위기와 공포를 깊이 숨기고 있고 답안이 없음이 잠재되어있어 이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고통인 것입니다.우리는 우리가 아주 좋은 마음 상태를 갖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아주 빨리 변하여 번뇌,탐진치(貪嗔癡)가 나와 좋은 마음이 지속되지 않게 하기도 합니다.우리가 책을 많이 읽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만 좋은 일은 기억하기 쉽지 않고,나쁜 일은 지우려 해도 줄곧 지워지지 않습니다.외재적인 것에 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외재적인 갖가지 요소,환경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집 문을 나서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만날지 스스로도 명확히 말할 수 없으며,자신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그 일을 좌우할 수도,장악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날씨도 마찬가지입니다.가물어서 비가 오기를 바랄 때는 도무지 비가 내리지 않고,수재가 났을 때는 하필이면 비가 계속 내리기도 합니다.이 모든 것이 행고이며 무상입니다.

2)인간 세상의 본질

무상은 인간 세상의 규율이며 인간세상의 본질입니다.모든 유정물,무정물은 모두 이를 벗어 날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무상의 규율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파악해야 할까요?그것은 비록 무상하지만 규율이 있습니다.바깥으로는 산과 강,대지,우주에서 안으로는 우리의 생명,우리의 몸과 마음,우리의 신념까지 모든 것은 무상한 것입니다.그래서 불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무상이라는 측면에서 시작하여 진력해야 합니다.죽음의 무상을 생각하는 것(念死無常)을 자주 듣게 되는데,죽음은 무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특징입니다.죽음의 경계는 가장 강력한 것이며 또한 무상의 가장 중요한 하나의 상징입니다.우리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무상행고”같은 이런 규율을 해결해야 하고,이 규율을 초월하고 불법을 배워야 합니다.

죽음 자체는 결코 무섭지 않습니다.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어떤 사람이든 죽음이라는 이 결과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무서운 것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죽음 이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만일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면,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만일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면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 안 좋아지는 것일까?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죽음 이후의 경계,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걱정,두려움이지 죽는 그 순간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현세의 모든 행위가 죽음 이후와 어떤 연관이 있고,내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병이 났을 때 부모로서는 너무 걱정이 될 것입니다.걱정거리는 여러 방면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아이의 병이 더 심해지지는 않을지 자기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무서워하지는 않을지,퇴원한 후에 잘 지낼 수 있을지 체력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등등입니다.이런 걱정거리는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동시에 이 걱정거리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죠.이것은 자식에 대한 관심입니다.자기한테는 걱정이지만 상대방으로 보면 관심입니다.

사실 걱정도 좋고,관심도 좋습니다.단지 사람의 심정,마음 상태의 표현인 것입니다.우리가 상대방의 몸이 좋아지게 하려면 의사를 찾고 치료하고 약을 먹고,음식,위생,건강 등에 주의해야만 합니다.신체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정신적인 측면,마음으로 보아도 적극적이고 건강하고,안정적이고 양호한 심리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4.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은 마음이며,생명은 무한히 이어진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보다 더욱 알기 어려우며 치료하기도 쉽지 않습니다.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몸의 건강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건강은 소홀히 합니다.우리가 어떻게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인지 좀 더 행복해질 것 인지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적인 즐거움과 행복은 등한시합니다.사실 사람이 즐겁게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마음속의 느낌,감각입니다.마음속으로 즐거움을 느끼면 즐거운 것이오,마음속으로 괴롭다고 느끼면 더 좋은상황이 닥쳐도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기의 내면에서 시작하고 내적으로 더 노력하고 진력하고자 함입니다.

세상의 지식은 갈수록 풍부해지고 학문의 분야도 갈수록 많아져서 사람들의 지식 보유량은 과거보다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하지만 현대인이 갈수록 지혜로워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문화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혜가 많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지혜는 문화,지식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이런 지혜를 갖고자 함입니다.어떻게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여 내면의 문제를 인식하고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이런 문제는 내가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이런 내면의 문제는 자기의 전생,내세와 연계하여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며,더욱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자기와 중생의 더 먼 미래,더 넓은 시공입니다.

지금의 과학은 비교적 발달되어 과거에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영역도 현재는 점차 열리고 있습니다.생과 사의 문제는,사와 생의 문제를 말할 수 있습니다.이 세상에 태어날때부터 죽을 때까지,그리고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날 때까지,생과 사는 원래 하나의 같은 시간입니다.다시 말하자면,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조금씩 조금씩,하루 하루,일년 일년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동시에 또 다른 상태에 나타나고 생기는 것입니다.현대의 양자역학(量子學)에서 기본입자(基本粒子)라 불리는 것이 발명되었습니다.이 기본입자의 특징은 즉생즉멸(即生即滅),즉멸즉생(即滅即生)입니다.즉생즉멸의 도리로 불교의 사생일체(死生一體),사생일여(死生一如),불생불사(不生不死),생명무한(生命無限)의 명제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같은 시각 안에서 생과 멸은 같은 시간,멸과 생도 같은 시간,생과 사도 같은 시간이며 내세의 생은 바로 현세의 죽음인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단지 우리의70-80년 생명의 끝을 나타냅니다.우리의 내세는 또 다른 자기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각각으로 보면 생명은 줄곧 이어지는 것입니다.하루 또 하루,일년 또 일년생 이렇게 지속되어 갑니다.우리 같이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깊게 사고해 보아야 하며 그것의 의의를 사유(思惟)해 보아야 합니다.이렇게 해야만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눈 앞의 생활,눈 앞의 작은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고,먼 이익에 착안할 수 있으며 자기의 무한한 생명과 연계될 수 있습니다.

5.무명과 지혜

1)업과(業果)에 통달하여 악업을 짓지 않는다

불법은 우리에게 모든 고통의 근원은 모두 번뇌에서 나오는 것이며 여러 가지 업을 지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번뇌의 출현은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지혜에 힘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자기의 신(身),어(語),의(意)삼업(三業)으로 갖가지 업을 짓게 하는 것입니다.불법을 배우는 것은 무명을 타파하고 번뇌를 해탈하여 업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번뇌와 지혜는 상대적입니다.번뇌할 때는 반드시 잘못된 일,나쁜 일을 하거나 악업을 짓습니다.지혜로울 때는 잘못된 일,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선업,청정한 업을 짓습니다.반대로 우리의 지혜가 조금 늘어나면 번뇌는 그만큼 줄어들고,지혜가 좀 더 늘어나면 번뇌도 그만큼 약해집니다.선과 악,번뇌와 지혜는 늘 스스로 대립되고 스스로 싸웁니다.선량함이 추악함의 반면일 뿐만 아니라 선량함의 전제,불법의 전제는 곧 악의 정지를 의미하며 결정하는 것입니다.즉,당신이 불법을 배워 내면에 불법이 있다면 악업을 지어서는 안됩니다.만일 우리가 한편으로는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고,참선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악업을 짓고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른다면 불법의 관념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어리석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악을 중지해야만 비로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악을 중지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하나인 것입니다.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좋은 일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쁜 일을 저지릅니다.이는 업과(業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어떤 원인,어떤 행위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모르며,이 결과가 얼마나 중대하고 얼마나 무서운지는 더욱더 모릅니다.불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정견(正見)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며,우리의 행동,우리의 행위로 하여금 자신과 모두에게 즐거운 결과,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 위함입니다.이것이 바로 업과의 원리,제법은 인연으로 시작된다는(緣起)원리입니다.공부를 해야만 이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공부하지 않는 다면 그런 힘,그런 방법,그런 해결 답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2)상구불도(上求佛道)하화중생(下化衆生)

우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삼보와 선지식을 따라 공부해야 합니다.경전에서는 “법사님을 볼 때 부처님과 같이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출가한 법사님이나 불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여겨야 합니다.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까요?부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 불법이며,선지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며 이는 모두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중생을 대해야 할까요?중생은 “어머니 같은 유정물(有情:사람이나 동물과 같이 감각이 있는 것)”이라고 부릅니다.불경에서는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요,모든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세상의 모든 중생을 나의 부모로 여기고,자신의 스승님을 부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의 사상의 수준,도덕 수준,사상 경계가 매우 고상하여,모든 사람을 자신의 부모로 여길 수 있으며,모든 스승을 부처님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이렇게 하면 그는 반드시 한편으로는 말을 듣고,그대로 하며,선지식이 알려준 불법대로 실천할 것이며,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은 모두 우리의 부모이기 때문에,반드시 성심 성의껏,대가와 사례를 계산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불법의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상구불도(上求佛道: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 입니다.

우리는 왜 이루기가 어려울까요?경전에 대해,우리에게 불법을 가르쳐주시는 법사님에 대해 공경의 마음이 생기지 않고,경건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심지어는 믿을 수 없다면 그 원인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무명의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우리와 서로 어울려 사는 사람들,친구,부모,형제자매,직장동료에 대해서도 서로간에 포용할 수 없고,솔직하고 성실하게 대할 수 없고,예로써 서로를 대할 수 없고,화목하게 어울릴 수 없다면,그 원인 역시 우리 마음속의 문제 때문입니다.내재적인 문제,즉,번뇌,무명,소지장(所知障)등 지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늘 우리 스스로의 좋지 않은 행위를 사람들이 알까,비판 받을까 두렵고 걱정하며,자기 눈앞의 이익이 손해를 보고 없어질까 두려워합니다.다시 말해 아주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쓰며 더 큰 이익,더 먼 이익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6.생명교육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1)마음상태가 결과를 결정한다

어떤 마음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행위가 있으며,어떤 행위냐에 따라 그 결과가 나옵니다.불법은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고 이러한 관념,이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이런 관념의 형성,이념의 배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랜 시간,한 생애 심지어는 여러 생애 동안의 노력에 의해서 만이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기도 합니다.우리가 아주 작은 결점 하나를 고치려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기에 물리는 것을 예로 들어보면,모기가 우리를 물면,그 자체는 그렇게 아프지 않습니다.우리의 피를 아주 조금 가져갔을 뿐이며,사실상 많이 빨아 먹지도 못합니다.하지만 우리가 모기에 물린 그 공포,두려움이 더욱 심합니다.모기가 우리를 물 때 우리의 마음은 계속해서 아프고 계속 무섭습니다.그런 두려움,공포,아픔은 모기한테 물린 아픔보다 몇 배는 더 큽니다.그런 공포가 자기의 마음에 남긴 흔적과 상처,영향은 더욱 심각해집니다.사실 이미 모기에 물려 버렸죠.당신이 두려워하거나 아니거나 이미 물려 버려 방법이 없습니다.그렇죠?물리기 전에 우리는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이래야 물리지 않는 것입니다.진짜로 물렸을 때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한번 물렸다고 무슨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이런 상황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발생하고 자주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남이 나에게 주는 상처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사실 이는 불필요한 것입니다.더욱 관건은 우리가 어떤 마음 가짐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에 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우리 마음속에 힘이 생겨 외재적인 여러 충격,각종 영향을 마주하고 저항할 수 있으려면 더욱 강한 불법의 힘으로 외재적인 좋지 않은 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제거해야 합니다.외재적인 좋지 않은 힘은 모두 탐진치요,악의 업력에 불과할 뿐입니다.우리 안에 존재하는 불법의 힘과 선의 힘은 비교적 강하여 자연스럽게 막아낼 수 있습니다.만일 막아낼 수 없어 영향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법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2)세간의 고난을 해결하자

우리는 하나의 결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람의 행위로 판단해야 하며,행위의 원인으로 판단해야 합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예를 들자면,우리가 지금 많이 듣는 “테러리즘”은 사실상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습니다.테러리즘이 어디에 있습니까?테러리즘은 하나의 개념입니다.테러리스트는 형상이 있습니다.그들은 오로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고 인류를 위협하는 일을 하여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깁니다.하지만 테러사건의 발생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지금도 세계의 많은 지역,많은 나라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있지만 매우 많은 사람이 반드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비록 공격을 받진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서워하며 특히 해외에 나갈 때 매우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면 쉽게 업과의 각도로 테러활동,테러 행위,테러리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이런 테러행위와 활동의 발생은 테러조직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사악한 관념들을 주입시켰기 때문입니다.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나쁘다 하는 부정적인 내용을 주입하고 선이 아닌 악의 교육을 해왔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하면 그 사람은 자연히 폭탄을 터트리고 사람을 죽여도 두려워할 줄 모르며,우리 사람의 마음 속에 그러한 나쁜 요인,즉 악인을 심는 것입니다.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우리 마음속은 불법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심지어는 여러 가지 고난을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힘을 갖고 마주 대하는 동시에 이런 능력으로 세상의 갖은 고난을 해결하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우리가 세간이 이러한 고난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하면 원인부터,교육부터,생명의 교육,마음의 교육,불법의 체계 교육부터 시작해야 하며,사람의 인식,사람의 가치관 방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바꿔나가야 하며,세워 나가야 합니다.

한 국가를 예로 들면,모든 국민은 국가의 주체이며,정부는 국민을 대신하여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갑니다.한 개인으로 보자면,마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끌어 나가는 주체인 것입니다.우리는 마음에 의지하여 우리의 몸을 이끌어 나가고,우리의 마음에 의지하여 우리의 행위를 이끌어 나갑니다.만일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위를 주도할 수 없거나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로 잘 일치하지 않는다면,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우리가 절이라는 이렇게 청정하고 조용하고 고요한 환경에 오면 자기의 마음을 더욱더 명확히 인식해야만 하고 자기의 마음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를 이해해야만 하고,우리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은 번뇌이며,필요한 것은 불법입니다.

사람의 신체는 우리의 겉모습일 뿐이며,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우리는 외관으로 사람의 가치를 볼 수 없으며,때때로 명확히 볼 수 없습니다.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그의 몸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어떤 사람이 생김새는 아주 건장하지만 만일 암을 앓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합니다.만일 어떤 사람이 외모는 그다지 멋지지 않지만 신체는 아주 건강하다고 합시다.이 둘 중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쪽입니까?아마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신체,건강한 마음일 것이 분명합니다.우리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싶다면 불법이 필요합니다.불법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건강하고 더욱더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3)생명의 즐거움을 추구하자

세간에서 우리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또한 흔히들 “사람의 욕망은 아주 크다”고들 말합니다.욕망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어떻게 자기 내면의 탐욕을 대해야 할까요?불법에 방법이 있습니다.불법에 요구가 있습니다.불법은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가장 주된 것은 우리는 욕망을 뒤쫓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왜 그럴까요?욕망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고 영원히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만일 얻었다고 하더라도 더 큰 욕망이 생길 것입니다.혹은얻었다고 하더라고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지 욕망이 아닙니다.욕망은 즐거움을 가져다 주거나 자아낼 수 없습니다.반대로 말하면,한 개인의 일시적인 욕망은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신의 먼 미래,더 많은 사람에게는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만일 우리가 스스로 생명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면,이런 결과와 지나친 과오는 없을 것입니다.

불법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고통을 벗어나고 즐거움을 얻도록 이끌어 주는 체계적이고 완전한 생명교육입니다.모두가 절에 하루 와서 불법을 한번 듣고 교육을 한번 받으면 모두가 수확이 있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이상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편집:설원춘
태그:불교 생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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