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느끼고 깨닫다> 제1장 인생을 느끼고 깨닫다

Author:쉬에청 큰스님     기사입력:2016-07-04 12:41:59
2006년 9월 10일 “중원보도(中元普度)” 법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쉬에청(學誠) 큰스님께서 용천사 서과원(西跨院)에서 제자둘에게 귀의(歸依)를 전수해 주시며 ‘인생을 느끼고 깨닫다’라는 중요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이번 법문으로 용천사의 체계적인 생명교육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이 절에 온 것은 불법을 배우기 위함이오,불법에 따라 자신의 버릇과 나쁜 점을 고쳐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보리와 열반에 이르기 위한여러 가지 선근공덕)을 모아 불과(佛果)를 성취하기 위해서 입니다.수행은 아주 멀고 기나긴 여정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귀의(歸依)와 수계(受戒)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1.인생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왜 귀의(歸依)와 수계(受戒),수행은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사람이 어떻게 태어납니까?왜 삽니까?“어떻게 태어나는가” 이는 우리가 인간세상에 온 원인입니다.우리가 인간세상에 온 이후에 왜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목적은 무엇입니까?이는 불교신자로서 모두가 관심을 갖고 토론하고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귀의(歸依)를 하기 전에 여러분은 집에서,세속의 사회에서 생활을 합니다.세속 사회에는 여러 가지 기준,여러 가치관,여러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우리가 세속사회에서 생활할 때 어떤 때는 고통을 느끼고,어떤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더 많은 상황 속에서는 고통 가운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즐거움 가운데 고통이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고 고통은 많고 즐거움은 적죠.고통은 영원히 즐거움보다 많습니다.고통의 시간은 영원히 즐거운 시간보다 깁니다.즐거움은 영원히 고통 보다 짧고 적습니다.우리는 불교에서 바로 이러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어떻게 해야 우리의 즐거움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우리의 고통을 점점 옅어지게 할 수 있을지,점점 더 짧아지게 할 수 있을지,종국에는 이러한 고통을 모두 없애버릴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귀의(歸依)는 남에게 의지한다는 말입니다.무엇에 의지한다는 걸까요?삼보에 의지하고 삼보에 귀의(歸依)한다는 겁니다.예를 들어,세상에는 자연재해가 발생합니다.태풍으로 집이 부서지고,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화재로 집이 다 타버리기도 합니다.기거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의지할 친척을 찾기도 하고,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귀의(歸依)를 해서 의지할 곳을 찾고,우리를 도와주고 보호해줄 사람을 찾습니다.이는 현실 생활 가운데 모두가 생활 차원에서나 물질적인 차원에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를 도와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하지만 번뇌,욕망,고통 같은 우리 내면의 문제는 세상에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해결방법을 찾을 수가 없고 해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우리를 위해 대신 이런 문제를 풀어줄 사람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절 안의 불법승 삼보(佛法僧三寶)만이 우리를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2천여 년 동안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歸依)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해탈을 얻었습니다.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의 중 가장 큰 실현입니다.

2.선과 악은 마음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의 몸과 사람의 형상을 갖고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과 오관을 구족하여 부모님께 이름을 받았습니다.사람의 이 신체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하지만 우리의 이 몸은 때로는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고,나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잘못된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여 타인,제3자 등 우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갈등을 불러오며,문제와 고난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바꿔 말하면,만일 우리의 몸,손,발,눈,귀,입을 통해 좋은 말을 하고 바른 길을 가고 좋은 일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로울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 두 가지 행위를 할까요?다시 말해 하나는 나쁜 행위,잘못된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착한 행위,옳은 행위 말입니다.하나는 사람들에게 이로운 행위이고 하나는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사람의 신체는 본래 잘못이 없으니 잘못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우리 내면의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큰 공헌을 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이 사람이 덕행과 품행이 있고 인품과 덕이 좋고 높다고 자주 말합니다.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선행(善行) ,남에게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악행(惡行)을 한다고 합니다.선한 행위는 선업(善業)이 되고 악한 행위는 악업(惡業)을 만듭니다.선한 행위는 자신과 타인에게 즐거운 결과를 가져오지만 악한 행위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손해를 보게 되며,남을 이롭게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그럴듯한 관념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됩니다.불법(佛法)은 이와 전혀 상반되게도 우리가 남을 이롭게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선량한 일이며 기쁨을 가져다 주는 일이라고 알려줍니다.세상은 늘 우리에게 남을 돕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 않아야만이 자신이 즐거울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만,불법(佛法)은 우리에게 남을 도와주고 남을 이롭게 해야만이 자신에게도 기쁨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이 두 정의는 정말 딱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불법(佛法)에서 말하는 “인과”는 아주 중요합니다.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할까요?우리는 남을 이롭게 하고 남을 돕는 것을 선택 해야 할까요?아니면 남을 돕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우리는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늘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남의 것을 차지하고 직장에서도 이득을 취하려고 합니다.이런 관념은 가져서는 안 되는 나쁜 관념입니다.우리는 왜 이런 관념을 갖는 걸까요?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걸까요?우리 자신도 자기가 왜 이렇게 결정하고,왜이렇게 하고 이렇게 생활하는지 모릅니다.자신이 모르는 것은 바로 당신이 원인입니다.불교의 용어로 말하자면 “무명”입니다.즉 무명상태인 것입니다.

3.마음을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1)삼보에 의지하여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다

모두들 절에 와서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 속 깊은 곳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우리는 이 원인을 찾아,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번뇌와 마음속 깊은 곳의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왜 우리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이러한 문제,번뇌를 자기 자신도 모르는 걸까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배운 것은 세간법(世間法)입니다.세간법은 세상의 도리에 근거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며,불법은 세간법 뿐만 아니라 속세를 벗어난 출세간법(出世間法)또한 포함하는 것입니다.세간법은 불교 용어로 속제(俗諦:속세의 진리)라고 하며,출세간법은 불교 용어로 진제(眞諦:참된 진리)라고 부릅니다.어떻게 속제를 기반으로 진제를 실천하여 증명할 수 있는가,진제를 볼 수 있는가?이것이 우리가 노력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목표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의 신체를 갖고 있습니다.이것도 아주 어렵게 얻게 된 것입니다.우리는 곧잘 이 신체로 잘못을 저지르지만 이 신체는 본래 잘못이 없습니다.그른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번뇌로 인해 움직이게 했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번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우리의 신(身:몸)ㆍ어(語:입)ㆍ의(意:생각)은 악업을 짓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바로 삼보에 의지해야 합니다.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불법을 배울 수 있고 우리 출가승이 출가를 할 수 있는 것,이 모든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출가의 목적은 불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불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생다겁(多生多劫)의 수행을 통해 도를 깨우친 후 말씀하신 것입니다.여러분이 절에 오는 것도 출가인처럼 불법을 배우러 오는 것입니다.불법을 배워 귀의를 하고,계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우리 출가승도 귀의를 하고,계를 받으려 합니다.재가거사(在家居士)도 귀의를 하고 계를 받고자 합니다.귀의는 같은 것입니다.모두다 삼보에 귀의하려는 것입니다.하지만 계율은 다릅니다.출가인의 계율이 훨씬 많고 더 엄격합니다.재가거사(在家居士)의 계율은 비교적 간단하며 가볍습니다.귀의를 하지 않고,계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법을 배울 수도 없고 불법을 잘 배울 수가 없습니다.이것이 바로 아주 중요한 기준이자 경계입니다.

우리는 삼보에 귀의한 후에 삼보의 요구와 법문,불법에 근거하여 우리 자신의 생활을 이끌고 우리 자신의 일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우리의기심동념(起心動念: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을 불법과 결부하여 불법에 따라 문제를 인식하며,불법에 따라 말을 하고,불법에 따라 길을 나아가고 일을 해야 합니다.또한 우리가 말을 하려고 할 때도 불법에서 요구하는 대로 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옳은 것 일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우리가 일을 할 때도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불법에 위배되는가의 여부를 의식해야 하며 길을 걸을 때도 개미를 밟지는 않았는지,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밟지는 않았는지,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이 우리에게 적합한 곳인지,가는 곳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이로운 곳인지를 모두 생각해야만 합니다.

2)수계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다

만일 우리가 팔관재계(八關齋戒)를 받고 오계(五戒),나아가 거사의 보살계(菩薩戒)까지 받는 다면 우리가 얻게 되는 공덕,의의,복덕이 아주 큽니다.이는 무슨 연유일까요?우리가 수계를 받은 후에 그 선법은 모든 중생에게서 얻은 것이며 삼보에게서 얻은 것입니다.똑같은 좋은 일을 하나 하더라도 세간의 선법과 불법중의 선법은 다릅니다.세간선법에서는 한 가지 일의 의미는 곧 그 일 자체의 의미이지만 불법(佛法)의 선법(善法)에서는 그것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그것의 대표성은 아주 넓고 큽니다.

예를 하나 들면,만일 당신이 그림을 그릴 줄 알아서 한 농민에게 그림을 그려줬다고 합시다.농민은 당신이 그려준 이 그림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몰라 그림을 받은 후에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릅니다.만일 당신이 그림을 그려 국가원수에게 준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의미도 달라집니다.똑같은 하나의 행위인데 그것의 의미,대표성은 다릅니다.국가원수는 한 나라의 수장이며,그는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예를 들어 중국의 국가주석은 십 몇 억 중국인을 대표합니다.당신이 그에게 그림을 준다면 그만큼 큰 공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삼보(불,법,승)가 있는 곳은 더욱더 이와 같습니다.당신이 하는 일,행위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이며,자신이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쌓기 위해 하는 것으로 이는 세간에서 하는 일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간에서 하는 일,당신의 직업을 예를 들면,당신이 이 직업에 종사하는 목적은 당신의 생활을 위해서 이며,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당신이 일을 조금 더 잘하면 직위는 조금 더 높아지며 혹은 큰 사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당신이 사업을 한다면 단지 당신의 재능과 지혜의 잠재능력을 일깨워 내재해 있는 잠재능력을 바깥으로 꺼내기만 할 뿐입니다.이런 잠재능력의 표출은 도대체 사회,타인,자신에게 이로운 건가요?해로운 건가요?그것은 말하기 참 어려우며 명확히 말하기도 힘듭니다.하지만 불법은 다릅니다.불법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생명적 잠재능력을 남김없이 드러내게 이끌어주어 자신과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습니다.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모두로 하여금,과거,현재,미래 그리고 더 먼 미래에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게 합니다.이렇듯 일을 하는 출발점과 목적이 크게 다릅니다.

4.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가 절에 와서 봉사자가 되어 더럽고,지치고,힘든일을 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모두들 기쁘게 일을 합니다.일을하면 할수록 힘이 나고 즐거워집니다.환경이 바뀌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는 집안일을 하기 싫어하여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왜 자기 집에서 혹은 자기 직장에서는 이런 능력이 발휘되지 않고 절에서는 잘 발휘될까요?왜 같은 한 사람이 두 개의 환경에서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이 되는 걸까요?여기에서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절은 불법승 삼보의 청정하고 귀한 곳입니다.청정하고 귀한 곳으로 인해 우리 내면의 번뇌를 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만일 우리가 산소가 부족한 곳에 있다고 합시다.히말라야산처럼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는 호흡이 곤란해지며 심지어는 사경을 헤매며 산소공급이 필요할 정도로 숨이 막히지만 해발이 낮은 곳에 오면 즉각적으로 생명이 소생하고 정신도 돌아옵니다.이는 환경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표명합니다.

여러분이 절에서 불법을 배우면 불법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을 느낄 수 있으며 불법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늘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불법이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천천히 느낄 수 있게 되고,이해할 수 있게 되고 조금씩 조금씩 불법을 믿으며 귀의하고,의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것들은 아주 중요합니다.

5.초심을 잊지 말고 항상 성찰하고 사유하라

1)초심을 잊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절에 와서 불법을 배울 때 수행에 진전이 없고 어설프고 심지어는 하면 할수록 하기 싫어지고 수행을 할수록 불법이 마치 자신과 더욱 멀어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이는 무슨 연유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신의 최초의 발심을 잊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불법을 어느 정도 배워 절에 와서 법회에 참가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곧잘 자신의 초심을 잊어버립니다.초심은 아주 중요합니다.당신이 귀의하고 불교를 배우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당신이 귀의하고 불법을 배우는 가장 주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잊으면 당연히 우리의 행위는 그것의 의의를 담을 수 없습니다.당신의 행위에 의의가 없다면 당신의 결과 또한 자연히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불법은 발심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당신이 청정심을 내었는지,염오심 (染汚心)을 내었는지,착한 마음을 내었는지 나쁜 생각을 하였는지,산란한 마음(散亂心)을 내었는지,아니면 내면에 계정혜(戒定慧)의 힘을 지닌 마음을 내었는지 이런 행위가 드러내는 의의는 크게 달라집니다.  

마치 학생이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공부를 게을리 하면 설령 매일 학교에 간다고 하더라도 시험성적은 형편없어질 것입니다.우리가 학교에 가서 오직 스스로 노력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선생님을 찾아 교육을 받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과제를 완수해내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만일 학교에 와서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따라 공부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지적해주신 문제점도 개선해 나갈 수 없으며 그러면 당신이 계속해서 학교에 갈지언정 허울만 있을 뿐입니다.우리 가운데 공부기간이 오래된 친구들 가운데서도 이런 문제점이 자주 발생합니다.

때로 우리는 자량(資糧)을 쌓기 위해서,불교를 잘 배우기 위해서,수행을 잘 하기 위해서 삼보(불,법,승)있는 곳에 온다고 말합니다.이때 당신의 인식은 단지 이론상의 인식일 뿐이며 실제로는 이 시각 당신의 마음은 첫날,처음 절에 왔을 때 그 순간의 마음과는 이미 크게 달라졌습니다.

2)질투와 교만

귀의와 수행을 할 때 아주 성심 성의껏 지성을 들여 간곡하게 해야 한다고 불법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진지하게 수행을 하기만 한다면 감응이(感應:서로 마음이 통함)있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지성을 들여,공경하는 마음으로,정성스럽게 노력하고 구하고 수행할 수 없다면,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산란(散亂:번뇌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뒤웅웅하다)하고,만심(慢心:자신을 지나치게 보고 자랑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고 ,도거(掉擧:욕망의 대상을 좇거나 과거의 즐겁고 행복했던 일들을 기억하는 등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는 상태)하고,질투하고,비교하고,분별(分別:모든 사물과 존재의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매달려 판단하고 사유·추론하는 의식 작용)하고,번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절에 와서 법문을 듣는 것도 어렵게 하며 이치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치대로 결정할 수 없고 법을 진정으로 마음속에 새길 수 없어 자신을 방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잘못을 쉽게 저지릅니다.질투와 교만은 비교적 쉽게 저지르는 잘못입니다.교만의 특징은 당신이 높은 곳에서 사람을 내려 보는 것이며,질투의 특징은 당신이 낮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낮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마치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나은 것 같아 보이고,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좋아 보입니다.다른 사람이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낫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됩니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하고 능력,재물,인품,용모 등을 다 구비하고 사업이나 가정도 자신보다 좋은 것을 보게 됐을 때 마음속으로 괴롭고 번뇌가 일어 고통이 생겨나면 이것을 질투라고 부르며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교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우리가 어떤 일을 좀 많이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다 나보다 못하고 내가 일을 더 많이 했다라고 느끼고,우리가 일을 좀 잘하면 다른 사람들은 실력이 좀 떨어지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다른 사람은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나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좋으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이 무능하다고 여깁니다.내가 많이 배웠으면 다른 사람은 못 배웠다고 생각하고 나의 체력이 좋으면 다른 사람은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교만은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마음 속은 항상 평정할 수 없으며 균형을 이룰 수가 없고 평상심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또한 마음 속은 평상심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대할 수 없고 불법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고대의 조사께서는 “평상심이 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평상심이 도이다”라는 말은 자신의 마음을 여실히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이 어떤 상태이며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명확히 볼 수있으며, 마음의 높낮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외재적인 문제는 모두 우리 자신의 내면의문제입니다.내면의 문제 가운데 어떤 문제들,곧 당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지혜가 부족하고 번뇌가 가로막아서이며,어떤 내면의 문제는 당신의 과거로부터 연속해온 것이며 과거에서부터 누적되어 온 것으로 당신의 내면을 가로막고 당신의 선량하고 청정하고 장엄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런 장애,문제를 깨끗이 없애고 참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6.원력(願力)과 지혜

우리는 스스로 이치에 맞지 않고 불법에 맞지 않는 행위를 이치에 맞고불법에 맞는 행위로 바꿔야 합니다.우리가 악행을 선행으로 바꾸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남을 이롭게 바꾸는것,이런 방법,이런 생활태도는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지혜에 의지하고 원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방금 말했듯이 세속사회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면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악과 옳고 그름,개인,단체,타인에게 유리한지 유해한지는 결국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불법은 이와 다릅니다.불법은 먼저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동기를 첫번째 순위에 두며,또한 동기는 한 사람의 모든 행위의 시작과 끝까지 일관적 입니다.사회에서는 직업에 기대고 사업에 의지합니다.우리 불법은 무엇에 의지하나요?지혜에 의지하고 원력(願力)에 의지합니다.지혜는 당신이 성패를 결정합니다.지혜를 갖고 있고 지혜가 많으면 당신은 성공할 것이며,당신의 성공확률도 높아질 것이며 당신의 성공 가능성은 커질 것입니다.지혜가 비교적 적거나 비교적 떨어진다고 하면 성공의 크기는 좀 작아지고 성공의 가능성도 낮아지며 결과도 작아질 것 입니다.

원력은 무엇을 결정할까요?당신의 시작과 끝을 결정합니다.예를 들어 우리가 크게 발심하고 보리심을 내었다고 합시다.우리가 지금 보리심을 낼 수 있는 것은 과거 수많은 생애와 세월 동안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지금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줄곧 자신을 깨우고 격려하며 보리심이 지속되도록 하여 잊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성불(成佛)하게 되는 것입니다.만일 과거에 이런 큰 마음을 낸 적이 없다면,지금부터 내기 시작하여 큰 마음을 내고 보리심을 내면 됩니다.이 보리심은 당신의 시작과 끝을 관통할 것입니다.이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사람의 원력입니다.시작과 끝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원력,바라는 힘,큰 바람의 힘에 의지합니다.만일 당신이 이런 힘이 없고,수행을 함에 있어서도 ,일을 함에 있어서도 힘이 없으며,생활에도 즐거움이 없다면 원인은 자신이 발원하지 않아 발원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발원을 하면 힘이 생겨 갖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자기 내면의 여러 번뇌와 어두운 면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발원이 없으면 내면의힘은없습니다.

지혜가 없이 발원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우리가 발원을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함으로 발원을 한 후에는 지혜에 의지해 완수해야 합니다.지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어떻게 해야 그것을 완성할 수 있을지를 알려줍니다.지혜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수행하고 불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어찌해서 수행하고 불법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걸까요?계율에 근거하며,귀의를 해야 하므로 지혜가 한층 한층 쌓여지는 것입니다.

7.자아를 초월하자

여러분은 절에 와서 많은 일을 하며 많은 자량(資糧)을 모았습니다.처음 온 사람도 선근이 있고 불법과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일 선근과 인연이 부족하다면 이곳을 찾아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반대로 당신이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던 것 또한 불법과 인연이 있고 삼보와 인연이 있으며,당신의 선근이 이미 발견되었다는 것이니 앞으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래 수행하고 배운 우리 도반과 출가한 법사 모두 큰 마음을 내고 크게 발원해야 하며 부단히 열심히 힘써 노력해서 불법을 배워야 합니다.불법을 처음으로 배운 사람과 처음 사찰에 온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자아를 초월해야 됩니다.자아를 초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바로 세속의 나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세속의나는목표가거의 비슷하기 때문에많은 행위에 문제가 있습니다.

질투,교만으로 인해 남을 이롭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방금 했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초월해야 합니다.자신을 초월해야 합니다.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모두들 잘못된 인지를 바탕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잘못이 오히려 옳은 것으로 변합니다.초월해야 합니다.해탈해야 합니다.이 방면에서 노력하여 “자기 중심”을 초월해야 합니다.자기 중심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소홀히 하고 많은 사람들을 등한히 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초월해야 합니다.우리는 인생의 일시성,인생의 한계성을 초월해야 합니다.당신의 안목이 좁기 때문에 당신이 보는 것은 내일의 일,아주 가까이에 있는 일 일뿐이며,멀리 있는 일은 명확히 보지 못합니다.한계성을 초월하면 우리 개인만 생각하거나 당신의 가족 몇 명,당신 직장 안의 몇몇 소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마음속의 골격이 쉽사리 넓어지지 않고,우리 생각의 갈래도 열리지 않으며,우리의 사유 패턴에 문제가 있는 것,이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초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모두가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비교적 쉽게 인식하며 비교적 쉽게 받아들입니다.

한 사람,한 사회,한 국가,한 단체 모두 역사가 있습니다.우리의 인생과정은 자신의 역사입니다.우리 이 단체의 과정은 절의 역사,불교의 역사입니다.우리 나라의 모든 각 민족,개개인이 걸어온 역정은 국가의 역사입니다.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일련의 위대한 공적을 이루어내고 모두에게 이로운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이렇게 하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고,모두가 기뻐할 수 있고,모두가 즐거울 수 있습니다.이는 단지 자신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단체에게도 국가에게도 좋은 일이니 어찌 기꺼이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우리가 드러내는 갖가지 면모,예를 들어 절에 와서 염불(念佛)을 하고,다함께 밥을 짓고,함께 토론을하고,교류하고,청소일을 하고,말을 하고 일을 하고행주좌와(行住坐臥:걷고,머무르고,앉고,눕고 네가지 동작),이 모든 것이 다 과정이며 우리의 생활입니다.이런 과정과 생활을 기록해 나가면 곧 문화이며역사이며인생입니다.우리는 유한한 인생 가운데서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고 아주 국한적인 시공의 인연 하에 우리의 가장 넓은 불법사업과 자기 생명의 청사진을 실행하고 완성해야만 합니다.우리는 이 모든 것을 조금씩 조금씩 열심히 구현하고,받아들이고 공부해야 합니다.

이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며,모두가 함께 노력하기를 바랍니다.아미타불!

편집:설원춘
태그:인생을 느끼고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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